November 13, 2012

원시청정-- 견해(2)




원인승의 견해 중에서 가장 수승한 것은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견해이다...
나가르쥬나가 가르친 귀류논증과 찬드라끼르띠가 가르친 귀류논증 사이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찬드라끼르띠는 공성의 측면을 강조하였고..
모든 것은 일체 자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다르마다뚜(법성)의 견해를 가르쳤다..
반면 나가르쥬나는 현상과 공성의 결합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찬드라끼르띠의 가르침이  말하는 공성에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찬드라끼르띠는 공성을 강조하고...나가르쥬나는 현상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두 요소의 상호불가분성(현공불이)을 이해하게 된다...
찬드라끼르띠의 견해.. 중론을 포함한 나가르쥬나의 여섯가지 저작에 있는 견해는
부처님의 세가지 법륜 가운데..이전법륜을 드러낸다...

나가르쥬나는 두번째 부처님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부처님의 견해를 모두 설명하는 저작들을 남겼다...
인도의 6장엄과 2지존은...
나가르쥬나의 논서와 부처님의 가르침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가르쥬나의 논서는 부처님의 세 가지 법륜을 모두 다룬다..
보행왕정론을 포함한 일곱가지 땀쪽(교훈집)은 초전법륜을...
중론..회쟁론을 포함한 여섯가지 논증은 이전법륜을..
네가지 찬가로 구성된 예찬은 삼전법륜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속전(Tantra)인 구햐싸마자에 대한 주해도 남겼다...

이와같이... 7보장과 같은 변지`롱첸랍잠의 저술을 보면...
모든 가르침의 모든 형태가 빠짐없이 발견된다...
7보장에는 부처님의 8만4천법문이 있고..
3백 6십가지 외도의 견해가 있고...
족첸의 원시청정과 자재광의 무분별로 결론을 내린다...
7보장에는 이 모든 것이 담겨있다..

3백 6십가지 외도의 가르침은 불법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모른다면.. 외도의 견해와... 불법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지 극단과 중관을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지 극단에 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중관의 궁극적인 견해를 알 수 있고...
나아가..족첸의 견해를 이해할 수 있다...

닝마의 대스승 중에.. 롱솜 빤디따(Rongzom Pandita)라는 분이 계셨다...
아띠샤께서.. 인도의 대성취자 크리시나차리야의 환생자라고 지목했던 인물이다..
그는 주로 원시청정의 대공성을 수행하고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은 거의 공성의 측면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리가 ``롱(Rong) 롱(Long)``이라 말하면...
변지 롱솜 빤디따와 롱첸랍잠을 가리키는 것이다...
닝마전승의 하늘에 떠있는 해와 달 같다...

롱첸랍잠은 현상과 공성의 결합을 주로 얘기했다...
세가지 법륜과 경전과 속전 전체에서..
롱첸랍잠의 7보장과 나가르쥬나의 가르침에 있는 견해는 서로 일치하여 구분이 안된다...
구분이 안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롱첸빠를 이렇게 평가한다...

``님의 마음은
잠부디빠의 6장엄과 2지존이 얻은 자비와 학식과 깨달음 전부를 갖추셨습니다...``

롱첸랍잠이라하는 사람은 티벳에 태어나서...경전과 속전..그 외의 학문에 통달하였다...
그는 싸라스와띠와 따라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전수받았고..
족첸의 가르침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비말라미뜨라의 환생자이다...
지금...족첸의 궁극적인 견해는 롱첸랍잠이라는 이름을 통해 지적되고 있다..
롱첸이라는 말을 통해 원시청정을 이해하고...
랍잠이라는 말을 통해 자재광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서 견해는 롱첸랍잠이다..라고 말할 때..이것은 족첸의 견해를 가리키는 것이며..
원시청정과 자재광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둘의 결합은... 부처의 법신과 색신의 결합을 의미한다...


스승의 구결이 말하는 궁극적인 견해는 롱첸랍잠이다..
그 견해는 외부에 있는 어떤것이 아니다...
견해가 외부에 있는 것이라면.. 안에있는 무명을 잘라낼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 근본 성품..여래장을 닦는 것이 명상이다...
명상은 무엇과 같은가?
공성.. 어떤 현상적인 모습도 없는 성품을 아는 것이....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을 통해.. 내재된 텅빈 성품을 자각할 때.. 자비를 구할 필요가 없다...
대자비는..텅빈 본성속에 이미 편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받는 자를 향해 비심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심은 고통을 보아야지만 일어난다... 고통을 보지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자비는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비는 본래부터 갖추어져있고 모든 사물에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자비는 자발적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향해 그냥 일어난다...
공성의 자각속에서
중생이 무명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것이 효과적인 방법인지도 알게 된다...
공성의 자각속에서 어떻게 해줄지를 아는 것과 자비는 다르지 않다...
이름만 다를 뿐이다...

``명상은 켄쩨 외쎄르이다...``

공성과 자비의 무분별을 이해하고 체득하였을 때...진정으로 공성을 자각하게 된다...
견도에 들었을 때...여래장의 근본성품을 비로서 깨닫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깨달음이 크게 자라게 된다..


그러한 자각을 가지고 있을 때...궁극적인보리심이 안에서 자라나게 된다...
그 보리심이 자라났을 때...사람은 중생의 마음과 부처의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안다..
이것을 자각한 명상수행자가...비민의 마음으로 가득해서...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한 모든 중생을...부처의 경지에 이끌어주려 할 때...
그가 행하는 것이 무엇이든...
눈을 깜박이거나 팔을 펴고 굽히는 것마저도...중생을 돕는 것이 될 것이다...
중생을 돕기도 했다...안했다 하는 그런식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그 일이 일어난다...
타이밍이 너무 이르거나 늦는 법도 없다...
말한 그대로다...
그러한 상태에 있을 때... 보살의 행위는 완성되는 법이다...

``행위는 승리자의 아들..갤외 뉴구이다...``

처음에는.. 견해.. 명상,.. 행위가 이해되어야 한다...
중간에는 그것이 수행되어야 한다..
나중에는 그 수행의 열매로.. 몸과 말과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견해..명상..행위가 이름은 달라도...본질적으로는 하나이다...
어느 누구의 마음 속에서도 그것은 나뉠 수 없다..

누구가가 공성을 자각하면...
한 생에 부처에 도달하리라는 것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게된다...
어떤 가르침이 완벽하게 의심을 넘어선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그것은 족첸의 가르침이다...
어떻게해서..족첸의 견해 한조각을 깨달았다고 모든 존재가 먼지처럼 사라질 수 있을까?
공성을 깨달으면... 사람은 세속팔풍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거기엔 희망이랄 것도 염려랄 것도 없다...
공성의 견해를 조금만 깨달아도...
사람의 마음은 세속적인 방일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방일이란...대양에 이는 거친 파도와 같은 것이다....
점차적으로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 본성에 적응이 되아야만 한다..

예를들면...1지에 도달한 보살은..원하기만 하면...
7일 안에 부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상사라가 텅 비워졌을 때 부처에 도달하기로 맘 먹을 수도 있다...
사람이 공성의 궁극적인 견해를 깨닫기 시작할 때...그렇게 할 수가 있다...
공성의 견해를 충분히 깨달을 때..
상사라의 현상속에서 고의 진리를 실제로 보게되더라도...
그것은 그저 실체가 비어있는 홀로그램과 같은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그것은 무지개와 같다...
그게 하늘에 나타나든 나타나지 않든...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상사라와 니르바나에 있는 어떤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고..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 편안히 머무르는 것을...
족첸의 견해 속에서 근심걱정없이.. 편안하게 머무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내면에서 편안한 기쁨을 느낄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사람은 상대적으로만 진실인 무명의 모습과..
무명에서 벗어난 궁극적인 진리가 어울려 놀고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세 구절은..정곡을 찌르는 세 마디 말 속에  있는 세 마디 말이다...
견해를 깨닫는 방법과 관련하여....
원인승에서는..위에서 설명했던것처럼...
학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견해를 받아들여..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을 한다...
그들은 인용과 논증을 통해 그것을 이해한다...
한번 이해를 하게되면... 궁극적인 본성에 대한 견해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부처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가르침을 받았으면.. 그것을 듣고...되새기고.. 명상해야만 한다...

처음에는...아직 들어보지 못한 것에 귀기울이고...
중간에는...이해될때까지..들은것의 의미를 깊이 사유해야 하며...
마지막엔...명상을 통해.. 사유한 바가 의미하는 것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지만.. 원인승과는 다르게...
인용과 논증으로는 족첸의 견해를 명료하게 할 수 없다...
족첸의 견해에 확신을 얻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분석적 명상을 하는 학자의 길...
모든 것을 있는그대로 내버려 두는 은자의 길....

학자의 길에서는..
인용과 논증과 구결을 통해 족첸가르침의 의미에 대해 확신을 얻을 수 있다...
구결은...롱첸랍잠의 7보장에서.. 한부분은 폭넓게 설명되어 있고...
다른 한부분은 깊이있게 설명되어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분석적명상을 하는 학자의 길이다...

있는그대로 모든 것을 내버려두는 은자의 길을 위해...
비마닝틱...칸도닝틱과 같은 족첸의 핵심구결이 있다...
이와같은 명상 핵심구결이 수행될 수 있도록...살아있는 체험에서 나온 말이 주어진다...
다섯가지 학문에 관한 지식이 없더라도...
이 구결을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적용한다면...성취를 얻을 것이다...
족첸은 가장 깊고.. 가장 광대한 가르침이므로...즉시..번뇌의 어둠을 모두 제거할 수 있다...
스승이 부처님으로 보이거나..법신 자체로 보인다면...족첸의 견해를 깨달을 것이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내버려 두는 은자의 길이다...

이러한 오탁악세에는...수명이 짧고...질병은 늘어난다...
정진의 힘은 약하고...쉽게 흔들리며...세속잡사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므로.. 최상의 구결 중의 핵심인 이것...정곡을 찌르는 세마디 말...
천신마저도 되살릴수 있는 감로법문이 설해졌으니.....
그 의미는 명상을 통해 체험될 것이고...
다양한 극단을 가진 견해들은 모두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명상을 수행할 때는..견해의 의미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러한 견해는 어디에 있는가?
극단에서 벗어난 궁극적인 견해는.. 멀리있는 것이나 광경같은 것이 아니어서..
바깥쪽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
미혹된 현재 마음을 알아차릴 때...견해는 원시청정의 대공성으로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을 본연의 상태로 놓아두어라..
마음의 본성을 바라볼 때...
우리는 상념이라는 미혹의 파도에 떠밀려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과거의 습관을 따르고..미래에 대한 생각을 따르느라..이 순간의 자각을 놓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 미혹의 파도를 멈추겠는가?
무명의 파도가 일어날 때...견해의 핵심을 알고있다면...
사변적인 학습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견해를 깨닫기 위해...공덕을 쌓거나 장애를 없앨 필요도 없다...

우리는 무명의 파도가 견해를 가리고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무명의 파도를 살필줄 안다면...그것은 하늘에 걸린 무지개나.. 신기루에 지나지 않으며..
비롯된 원인도 없고... 차지한 공간도 없으니...사라질 것도 없다..

핵심구결이 가지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명상을 통해 견해를 깨닫고자 한다면...
그리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왜 그럴까?
무명의 파도에 휩쓸려 있는동안...
본연의 마음상태에 집중하면서 강하게 `팻~!`하고 소리지르면..상념은 흩어지게 될 것이다..
수미산만큼이나 큰 모래더미라도.. 태풍을 맞으면 금새 흩어지고 말 것이다...
`팻~!`하고 소리 지르는 것은 그와 같다...

그렇게 소리지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혜와 방편이 결합된 지혜를 의미한다..
그것은 숲 전체를 베어내는 날카로운 도구와 같다...
무엇을 잘라내는가?
과거의 무지 뒤에는 또 다른 무지가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또다른 무지가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염주에 꿰어진 염주알과 같아서...
줄이 끊어지면.. 염주알은 모두 흩어지고 말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혹된 상념에다가 팻~!하고 소리지르면...
미혹된 상념은 끊어져 흩어지게 된다..
그 때.. 그대로 드러난 본연의 그 상태를 들여다 보라...
마음은 모습도 색깔도 질료도 없지만...
어떤 인식이 본성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꾸밈이 없는 본연의 상태에 머무는 것이 `견해는 롱첸랍잠이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다..

무명의 파도를 잘라내기 위해...
강력하고 짧고 날카롭게 팻~!하는 소리를 질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상대적 진리의 거짓말에 속고있다...
그 거짓말은 팻~!으로 잘라낼 수 있다..
그것은 자체 발광하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러한 본성을 자각했을 때...
`오호라..이것이 바로 꾸밈이 없는 법성의 모습이구나~`하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본성에서 올라오는 현상.. 즉 상념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과 같다...
`무명이란 바로 이런 것이야~~`하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답이 풀리는데... 이것을 두고 견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곡을 찌르는 세마디 중 첫번째 정곡이다...

명상체험을 통해 견해의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게 하려면...
과거의 생각을 따라서도 안되고...미래의 생각을 일으켜서도 안된다...
마음의 동요없이...지금이순간의 마음에 머물러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신심이나 헌신..자비와 같은 것인지...
탐욕이나 분노..무지에 속한 것인지 생각할 것 없이...
꾸밈이 없는 본연의 상태에 머무르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흙탕물은 휘저으면 맑아질 수 없다...
그러나 있는그대로 내버려두면...맑아질 것이다...
꾸밈없는 마음이 충분히 각성되면... 꾸미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이 일체 함이없이 머무를 때...
마음의 본연의 상태가 감각적 대상으로 인지될 수는 없다하더라도...
이게 바로 그거야~라고 말할수는 있다..
하나의 대상으로 붙잡을 수는 없을지라도... 이리저리 궁리하지만 않는다면..
마음의 본연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각의 상태로 꾸미려는 노력없이 머무른다면...
그러한 자각은 좀 더 분명해지고...미혹된 마음은 이윽고 사라질 것이다...
그때 근본스승에 대한 신심과 헌신의 도움을 받아...마음의 본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본성을 자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안에 있는 견해가 자신에게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승의 가피로.. 저 어디에선가 불쑥 생겨나는 그런 류의 것이 아니다...
전에는 없었는데...새로 얻게되는  그런 류의 것이 아니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이러한 보석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자기 집 마루 밑에서..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궁핍함이 사라졌다고 확신하게 해줄 것이다...
본성을 자각하는 그러한 상태에 머무는 것..
이것은 족첸의 견해를 간결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그러므로...그러한 상태로 인위적인 노력없이 머물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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